전통 문양의 현대 패턴화

전통문양을 일러스트로 재해석한 작업기록

cozyforest-blog 2025. 7. 18. 14:32

전통문양, 일러스트 작업의 출발점이 되다

전통문양을 일러스트로 재해석하는 작업은 단순히 형태를 옮기는 행위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상징과 맥락을 시각적으로 다시 구성하는 과정이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먼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에서 공개한 전통문양 DB를 참고하며 수막새, 단청, 연화문, 보상화문, 박쥐문 등 다양한 문양의 구조와 시대적 배경을 분석했다. 이 자료들은 고해상도 이미지뿐 아니라 문양의 상징성과 반복 구조, 위치에 따른 배치 방식 등이 정리되어 있어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단청의 경우 곡선의 리듬과 색감의 조화가 핵심이었고, 연화문은 잎사귀의 배치 비율과 중심부의 대칭 구성이 시각적 힘을 주는 포인트였다. 기존 문양을 그대로 따오기보다는 그 원리를 읽고, 디지털 일러스트로 재구성할 수 있는 시각 언어로 바꾸는 데에 집중했다. 이 과정은 마치 오래된 건축물에서 선 하나를 따내는 작업처럼, 의미 있는 조형을 뽑아내고 다시 현대의 감성으로 재배열하는 일에 가까웠다.

 

곡선과 비례, 디지털 드로잉에서 다시 그리다

본격적인 드로잉 작업은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Adobe Illustrator)에서 벡터 기반으로 진행되었고, 가장 먼저 수작업 스케치 형태로 조형의 큰 틀을 잡은 뒤 중심 축을 기준으로 대칭과 비례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정리했다. 연화문을 예로 들면 꽃잎의 수가 8, 12, 16장으로 나뉘는데, 각 버전마다 회전 각도와 중심점의 설정이 달라야 안정적인 구도가 완성되었다. 디지털 상에서 그리더라도 선 하나하나의 곡률과 마디, 닫힌 형태의 비율이 시각적 안정성을 결정짓기 때문에 수학적 계산과 조형 감각을 동시에 고려해야 했다. 컬러는 전통 오방색을 기본으로 했지만, 투명도와 채도를 조정해 현대적 감각에 맞게 조율했고, 배경에 깔리는 한지 질감의 표현은 브러시 텍스처와 레이어 마스킹을 활용해 입체감을 더했다. 전통문양의 원형미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재 디지털 그래픽 환경에 어울리는 시각 언어로 바꾸는 이 작업은 일러스트의 기술적 완성도 못지않게 전통에 대한 해석력이 중요한 열쇠였다.

 

전통문양을 일러스트로 재해석한 작업기록

 

문양에서 감정을 끌어내는 색과 리듬의 설계

단청이나 박쥐문, 귀갑문처럼 반복 패턴이 강한 문양은 그 자체로 리듬감 있는 시각 요소지만, 이를 감성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선 단순 반복이 아닌 ‘감정의 흐름’을 고려한 색 배열과 밀도 조정이 필요했다. 단청에서 착안한 일러스트 작업에서는 청록과 진홍의 대비를 조절하며, 중심부와 외곽부의 명암을 달리해 시선을 이끄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문양이 감정적으로 부담스럽거나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시각적 여백을 충분히 확보하는 방식이었고, 이는 조선시대 회화에서도 볼 수 있는 정적인 구도 원칙을 차용한 것이다. 또한 일부 일러스트는 완성된 후 정지된 형태라기보다 움직이는 모션을 전제로 설계되어, 후속 작업에서 스크롤형 콘텐츠나 인터랙티브 요소에 쉽게 전환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전통문양이 단지 예쁜 무늬가 아니라, 시선을 따라 흐르고 감정을 따라 확장되는 ‘감성 설계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 구간이었다.

 

일러스트의 용도, 전통문양의 생활화 실험

완성된 일러스트는 텍스타일, 스마트폰 배경화면, 엽서, 온라인 배너, 이북 커버 등 다양한 매체에 테스트되었고, 문양이 들어간 위치와 비율, 색 대비에 따라 전달되는 느낌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모바일 화면에서 적용할 때는 문양의 중심을 좌우로 배치하느냐 상하로 놓느냐에 따라 전체 분위기가 확연히 바뀌었으며, 사용자 피드백을 통해 이 조정 과정이 반복되었다. 수막새에서 따온 연화문 패턴은 엽서 시리즈에 가장 안정적으로 적용되었고, 보상화문은 SNS 썸네일 이미지로 활용했을 때 높은 반응을 얻었다. 전통문양을 일러스트화해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은 결국 디지털 기반의 문화 체험 확장 실험이었고, 시각적으로 익숙해진 패턴은 사용자에게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이 실험은 전통이란 꼭 박물관이나 한복 위에서만 머물 필요가 없으며, 디자인을 통해 일상으로 침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했다.

 

전통문양을 일러스트로 재해석한 작업기록

 

재해석을 넘어, 문화 감각으로 이어지다

이 일러스트 작업은 단순한 시각 재현을 넘어, 전통문양이 오늘의 시선에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문화적 접근이기도 했다. 문양을 가져올 때 단지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양이 지닌 기원과 상징, 선조들이 반복했던 시각 구조의 의미를 읽고 재맥락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다. 특히 문화재청과 KCDF에서 공개한 오픈소스를 활용하면서도, 원형 훼손 없이 변형과 응용이 조화를 이루도록 세심한 조율이 필요했다. 일러스트라는 형식은 디지털 세대에게 친숙한 언어이기에, 전통문양이 이 형식 속에서 감정적 감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결국 작업이 끝난 후에도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선의 곡률과 공간의 비율이 만들어낸 정서적 여운이었고, 그 감각은 이미지 파일을 넘어서 일상 속 감상으로 이어졌다. 전통문양을 일러스트로 재해석한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화의 결을 건네주는 일이라는 것을 실감한 기록이었다. 더불어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시각적인 재현에 그치지 않고, 전통문양이 하나의 감각적 언어로 지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는 ‘이것이 전통이다’라고 가르치기보다, 감각적으로 익숙해지도록 환경 속에 자연스럽게 배치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다. 시선을 머무르게 하는 곡선, 여백을 남기는 구조, 반복이 주는 안정감은 문화적 배경을 설명하지 않아도 사용자의 감정 안에 스며들 수 있다. 이는 결국 전통문양이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감성의 층위에서 먼저 체득되는 문화 감각임을 의미하며, 시각적 소통의 또 다른 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